어머니 하나님 반박 요소로 정말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가 '갈라디아서 4장 26절'과 '창세기 1장 26절'이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는 핵심 구절들이다. 반박 논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구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먼저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논리부터 살펴보자.
Part 1.
어머니 하나님 반박: 갈라디아서 4장 26절
아주 간단한 구절, 간단한 논리다. 하늘에 예루살렘이 존재하며 그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어머니가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직관적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인이었던 사라를 의미하며 그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의성경, 갈라디아서 4:26)
그런데 이 구절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어떻게 반박한다는 것일까? 그 논리에 대해 소개한다.
Part 1-1.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어머니'는 새 언약?
워낙 위의 구절이 직관적인지라 '그런 해석일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머니로 존재하실 리가 없다'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까. 그런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이 논리의 근거가 무엇인지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2~26)
어머니 하나님 반박 논리를 펼치는 이들은 "성경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전체 문맥을 살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22절부터 26절까지를 꼼꼼히 읽은 후, "이처럼 갈라디아서의 '우리 어머니'는 새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지, 어머니 하나님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어떻게 아니라고 설명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을 하나 짚자면, 우선 저 주장은 잘못된 게 아니다.
Part 1-2.
한 단어가 꼭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성경에는 다양한 비유들이 있고, 한 단어가 꼭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예는 차고 넘친다. 첫째로 '어린 양'의 경우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로 1'처음 익은 열매' 역시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십사만사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2 심지어 '물'의 경우는 '생명수'뿐만 아니라 '온 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등 세 가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열거한 예들 외에도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표현들이 많다. 3
그럼 여기서 이 얘기를 왜 했느냐?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어머니' 역시 '어머니 하나님'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새 언약'으로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문맥상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어머니'는 '새 언약'을 의미한다.
Part 1-3.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조금 글이 길어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보통의 기독교인들이 새 언약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 이 세 가지 개념이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글이 장황해질 수 있으니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번거로우시겠지만 꼼꼼히 글을 몇 번씩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3-1. 하늘 예루살렘과 하나님
앞서 언급했듯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우리 어머니'는 하늘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 하늘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4
그런데 사도 요한의 계시에서는 생명수를 주시는 또 다른 주체가 등장한다.
성도나 교회는 생명수를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만큼, '성령과 신부'가 하나님이시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구절에서는 하늘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는다고 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지 말자. 이미 하나님께서는 두 구절 사이의 연결고리도 만들어 두셨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요한계시록 2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19~21)
제시해드린 두 구절을 참조해보면,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표현과 하늘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는다는 표현은 서로 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하늘 예루살렘은 성령과 신부 중 신부를 의미한다. 사도 요한의 계시 속에서 천사는,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한 후 하늘 예루살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5
하늘 예루살렘 → 생명수
하나님 → 생명수
하늘 예루살렘 = 하나님(신부)
3-2.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
이번에는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 사이의 관계를 증명해보겠다. 어머니 하나님 비방 논리를 펼치는 자들은 하늘 예루살렘이 새 언약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주장은 일부 옳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보자. 사도 바울은 왜 하늘 예루살렘을 설명할 때 '새 언약'이라는 개념을 동원했을까? 이는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 사이에 모종의 유사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유사함을 풀어낼 열쇠가 바로 생명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3~14)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이 있는데,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영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가르침을 주실 때 또 다른 영생의 방도를 제시해주신다.
앞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마셨을 때 영생한다 하였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을 때 영생이 주어진다고 한다. 여태까지 포스트를 정독하신 분들은 금방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이 두 말씀은 모순이 아니라 짝된 말씀이며, 생명수를 마시는 방법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새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9~20)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예수님(하나님) → 생명수 → 영생
하나님의 살과 피 → 영생
생명수 = 하나님의 살과 피
하나님의 살과 피 → 새 언약
생명수 = 하나님의 살과 피 = 새 언약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로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을 하늘 예루살렘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리한 내용이 하늘 예루살렘과 어떤 관계인지도 추가하여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하늘 예루살렘 → 생명수 → 영생
하나님 → 새 언약 → 영생
하늘 예루살렘 = 새 언약
3-3. 새 언약과 어머니 하나님
결국 생명수와 새 언약이 다르지 않고, 생명수 흐르는 하늘 예루살렘과 새 언약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다르지 않으며, 갈라디아서의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하나님)'을 의미함과 동시에 새 언약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도 바울은 단순히 새 언약을 설명하고자 하늘 예루살렘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새 언약 안에 영생이 있듯 어머니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지점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아래의 구절들 속에 담긴 참 뜻도 파악할 수 있다.
이삭이 하늘 예루살렘의 비유 대상인 사라의 자녀였듯,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새 언약 안에 들어야 하고 또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새 언약을 믿는 자,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한 자라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
Part 2.
어머니 하나님 반박: 창세기 1장 26절
이번에는 창세기 1장 26절 관련한 반박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머니 하나님 반박 논리는 무척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창세기 1장 26절에 등장하는 '우리'는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해당 구절을 먼저 살펴보자.
하나님은 분명히 한 분이신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지 않으시고 '우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우리'라 지칭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남자'와 '여자' 두 부류다. 남자 형상의 하나님을 통상적으로 "아버지"라 부르는 만큼, 여자 형상의 하나님은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논리다.
여기에 대해 기성 교단에서는 이렇게 반박한다.
Part 2-1.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이시라는 대명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우리'라는 표현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묘안으로 기성 교단에서 제시한 아이디어가 바로 '삼위일체'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하심을 증명할 수 있다고도 가르친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대해서 다룬 포스트는 아래를 참조.
그렇다면 정말로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기성 교단의 어머니 하나님 반박 내용에 대해 이제부터 차근차근 다뤄보겠다.
Part 2-2.
어머니 하나님 반박 논리의 오류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면, 그 '우리'는 몇 분인가? '삼위일체'이므로 세 분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당연히 '세 부류'여야 한다. 그런데 왜 창세기 1장 27절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남자와 여자 둘 뿐인가? 이 부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난처한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있으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인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한 분은 '여자 형상'이어야 한다. 과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중 어느 쪽이 여자 하나님이신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신성모독이라 반응하는 기성 교단의 신도 분들도 있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세 부류의 하나님께서 두 부류의 사람만 창조하실 수도 있고 여자 형상이 없으셔도 여자 형상을 창조하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그런데 왜 그 전지전능함을, 자신의 무논리를 변호하는 핑계로 삼는가? 어쨌든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고, 그 사람은 남자와 여자 두 부류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라고 설명했으면 모르겠지만,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자랑스럽게 가르칠 때는 언제고 그 논리가 반박당하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Part 3.
'삼위일체' 개념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사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길게 다룰 것도 없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애당초 복수형도 아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는 '거룩하신 세 분이 근본 하나다'라는 의미로, 복수형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수형 표현'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기성 교단의 신도 분들은 살짝 의아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성 교단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안에는 세 위격이 있으며 각 위격은 동일하지 않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다면, 정상이다. 지극히 정상이다. 저 한 문장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삼위일체가 신학적 난제인 것이다. 하지만 삼위일체는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겸사겸사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포스트를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Part 3.
글을 마치며
어머니 하나님 반박 논리는 대부분 그 속에 허점이 존재한다. 어머니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신다. 다만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필자에게 어머니 하나님 반박 논리를 부정당했던(위에서 신성모독을 언급했던) 기성 교단의 교인 역시 결국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을 쓰는 내내 성경의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고 그러한 느낌은 맺음말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매한가지다. 영생과 지혜의 근원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의지하여, 더욱 말씀의 검을 갈고닦아 많은 이들에게 진리의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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